
단순한 순서였던 '갑', 어떻게 권력의 대명사가 되었을까?
계약서 속 '갑'과 '을'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순서를 나타내는 용어에서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갑'은 권력과 우위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는 '갑질'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면서, '갑'이라는 단어는 일상 속 불공정함의 대명사로까지 발전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갑'이 어떻게 주인공이 되었는지, 그 언어적 기원과 사회적 맥락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계약서 속 '갑'과 '을'의 어원
'갑'과 '을'은 본래 계약 당사자의 순서를 나타내는 법률 용어입니다.
'갑'은 첫 번째 당사자, '을'은 두 번째 당사자를 의미하며, 우열 관계보다는 단순한 기술상의 편의를 위한 명칭이었습니다.
| 갑 | 계약에서의 제1당사자 (주로 제안자 또는 위탁자) |
| 을 | 계약에서의 제2당사자 (주로 수락자 또는 수탁자) |
이 용어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계약서 전반에서 사용되었으며, 그 사용 역사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한 순서가 '우위'로 변한 이유
현실에서는 '갑'이 계약의 주도권을 가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고용계약에서는 회사가 '갑', 노동자가 '을'이 되고, 하도급 계약에서는 발주처가 '갑', 수급업체가 '을'이 됩니다.
이처럼 '갑'의 위치가 돈을 주거나 권한을 위임하는 입장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적 우위로 해석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갑'은 명백한 권력자, '을'은 종속적인 존재로 인식되며 상징적 의미가 왜곡되기 시작했습니다.
사회 구조 속에서 강화된 '갑'의 위치
한국 사회는 특히 위계질서가 뚜렷한 조직 문화와 중앙집권적인 구조가 강해, '갑'의 위치가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 고용 시장 | 기업(고용주) |
| 건설/용역 | 발주자 |
| 프랜차이즈 | 본사 |
| 금융/보험 | 본사 또는 주거래 은행 |
이처럼 '갑'은 실제로 계약 관계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관계에서도 힘의 주체로 작용하게 되었고, 이런 현실이 '갑'을 '주인공'처럼 느끼게 만든 배경이 되었습니다.
'갑질'이라는 신조어의 등장
2010년대 이후, 사회 곳곳에서 권력을 남용하는 행위에 대한 문제 제기가 활발해지면서 '갑질'이라는 단어가 대중화되었습니다.
'갑질'은 '갑'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부당한 요구나 행동을 하는 것을 지칭하며, 대표적인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예를 들어, 프랜차이즈 본사가 가맹점에 과도한 계약 조건을 강요하거나, 고용주가 직원에게 비상식적인 요구를 하는 경우 등이 해당됩니다.
일상어가 된 법률 용어
본래 계약서에 한정되던 '갑'과 '을'은 이제는 일상 대화 속에서도 흔히 쓰이는 표현이 되었습니다.
"나 이번엔 진짜 을이었어", "갑이 너무 갑질해"와 같은 문장은 권력 구조를 설명하는 데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습니다.
이는 법률 용어가 사회 현상을 반영하며 일상 언어로 확장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때
중요한 점은, '갑'이라는 말 자체는 원래부터 권력이나 우위를 상징하는 단어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단지 순서를 구분하기 위해 사용된 명칭이었으며, 사회 구조 속에서 그 의미가 바뀐 것뿐입니다.
| 갑 | 계약 제1당사자 | 우위, 권력자 |
| 을 | 계약 제2당사자 | 종속, 약자 |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언어가 사회를 반영하고, 동시에 사회가 언어를 통해 재구성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결론: 언어는 순서였고, 사회가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갑'이라는 단어는 원래 단순한 순서를 나타내는 표현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권력 구조와 현실적인 관계 속에서 '갑'은 점점 권력과 우위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갑질'이라는 단어로 이어지며 사회 문제를 표현하는 언어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갑'이 주인공이 된 이유는 언어 자체보다는, 사회 구조와 그 안에서의 인간 관계가 만들어낸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